1800년대 후반부터 본격화된 일본과 서구 열강의 조선 진출은 대한제국에게 있어서 근대로의 빠른 전환을 당면 과제로 던져주었다. 그러나 대한제국 시기의 지식인들 대부분은 근대 국가로의 빠른 도약을 위해 일본에서 수입되어 굴절된 담론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였고, 그렇게 대한제국에 소개된 과학 담론은 계몽과 자강의 수단으로 받아들여졌다.
대한제국 시기에 수용되었던 많은 과학 담론 중에 위생 담론은 특히 이러한 양상을 보이는 사례이다. 당대의 글들은 국가의 역할을 배제한 채 개인의 건강을 유지하는 것이 민족과 동포를 위한 길이며, 나아가서는 애국의 길이라고 설파했다. 당장에 닥친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서구 문명의 맹목적인 추종을 바탕으로 한 과학 담론의 수용으로 근대화를 이루어내려 했고, 충분한 논의 없이 수용한 과학 담론으로는 대중을 설득하기 어려웠기에 민족 개념을 활용했다는 것이다.
근대 초기 지식인들은 서구의 근대적 과학 담론을 소개하면서 담론에 대한 비판이나 담론을 수용하는 행위에 의문을 가지는 것조차도 애국에 대한 의문을 품는 것으로 치환시켰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제국의 지배 논리와 놀랄 만큼 흡사하다. 근대화의 유무를 통해 국가를 이분법적으로 규정하고, 근대화가 이루어지지 않은 국가를 미개한 국가로 규정하여 근대화를 빌미로 식민지배의 정당성을 확보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유사성 때문인지 근대 초기 지식인들 중 상당수는 근대 초기에 과학 담론을 설파하다가 식민지시기에 이르러 식민지의 기술 생산 실무자의 역할을 담당하게 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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