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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소설 검열과 방인희의 대응 방식 본문

학술성과/논문

일제강점기 소설 검열과 방인희의 대응 방식

인문미래연구소 2025. 4. 28. 13:42

  본 연구는 문학사에서 사라진 작가 방인희의 실체를 규명하고 제국 일본의검열에 의해 작가의 작품 성향이 어떻게 변화되었는가를 살펴봄으로써 식민지조선 작가들에 대한 제국 일본의 검열 정책의 방향성을 확인하고 그에 대한 작가들의 대응 방식을 밝히는 데에 목적이 있다. 이 같은 지점을 확인하기 위해서 방인희의 생애와 작품활동에 대해 조명하고, 검열된 작품 「생명」을 기점으로 전후작품 성향을 분석함으로써 통제 정책의 실체와 그에 대한 작가들의 자기검열 사례를 확인하고자 하였다.방인희는 진천을 근거지로 기자활동과 청년단체에서 활동한 인물로 대중들을 대상으로 한 시를 발표하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하지만 1931년 9월 1일 중국인과 불온한 필담을 주고받았다는 이유로 구류되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전환점을 맞이한다. 이 시기를 기점으로 방인희는 시에서 소설로 작품의 범위를 확대하였으며, 식민지 조선의 청년들의 문제에 집중하기 시작한다. 초기 소설들은 비록내용이나 주제의 깊이에서 명확한 한계를 보이지만 조선 청년들의 실업문제, 황금이라는 허상을 쫓는 청년의 문제 등 당대 청년들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문단으로부터 주목해야 할 작가로 평가받았다. 하지만 1934년 『조선일보』의신인문단에 연재되었던 방인희의 소설 「생명」이 검열에 의해 중단되었음을 확인하였고, 『조선출판경찰월보』에 남아있는 검열 기록을 확인할 결과 소설에서 문제가 된 부분이 치안과 관련해 행정처분을 받을 정도의 내용이 아니었음을 확인하였다. 출판 검열에서 치안은 명백한 사유에 의한 결과물이었음을 고려했을 때, 소설이 검열된 이유는 내용보다는 출판경찰의 의도에 의한 것이었음을 확인하였다. 즉 제국 일본은 식민지 조선에 대한 정책과 관련하여 조금이라도 비판적인요소가 있다고 판단되면 행정처분을 통해 무차별적인 검열을 감행했다는 것을보여준다.검열 이후 방인희는 시대적 문제들을 다루던 작가에서 단순히 힘든 삶을 살아가는 인물들의 이야기를 그려내는 작가로 변화한다. 그리고 이 같은 변화는 검열로 인해 작가 스스로 자신의 작품을 변화시키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는 지점이기도 하다. 촉망받던 소설가 방인희는 식민지 조선인들이 직면하고 있었던 시대적인 문제들, 그리고 농촌의 절망적 궁핍에 대한 심도 깊은 이해가 전재되어 있52 ―  통권 10집(4권 4호) 었다. 하지만 검열을 기점으로 문제의 본질은 사라지고 단순히 표면적인 삶의 모습들을 그려내는 작가로 방향성이 전환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를 통해식민지 조선의 출판물 시장에 대한 통제 정책이 식민지 작가들에게 얼마나 심각한 자기검열을 가지고 올 수 있었는지를 밝혀냈으며, 검열이 조선의 출판 시장을적극적으로 통제하고자 했던 수단이었음을 알 수 있다.